중앙대 싸움을 지지하며 -학생들이여, 대학에서 싸움을 경험하길-
나는 01학번이다. 마침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그 해에, 삼성에서 성균관대를 접수했다. 삼성이 어떤 곳인가. 당시 새내기들 사이에서는 삼성의 재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성균관대가 뜰거라는 말들이 돌았고, 혹자는 이를 비꼬아 성균관대를 삼성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이어지는 요즘, 10학번 입학을 앞두고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져 눈길을 끈다. 이번에는 ‘두산대’다. 정겨운 주택가와 상점가를 끼고 있는 흑석동에 위치한 중앙대학이 위기에 처했다. 진중권 교수가 떠난 것은 시작에 불과했나보다. 두산기업의 중앙대학교 인수. 그런데 이는 단지 기업과 대학의 문제로, 대학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의 문제로 축소하기에는 어딘가 꺼림칙한 구석이 많다. 이번 중앙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무엇보다도 퍼뜩 떠오른 생각은 ‘대학은 작은 사회’라는 구태의연한 말이었다. 가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물체를 보았을 때, 이를 조그맣게 만들어서 내려다보면 한 눈에 정체가 파악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즉, 중앙대 사태라고 부를 수 있을법직한 일련의 일들은 마치 이명박 정부 이후 한국사회에 벌어진 혹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축소판처럼 보인다는 것. 따라서 이 일은 중앙대 혹은 중대 학생들이 시험대에 올랐다고만 여길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돈이면 다 된다는 사고방식이 그렇다. 중앙대 박용성 이사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재벌인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에 대해서 학생들은 두산을 대환영하고 있으며, “솔직히 말하면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한 바 있다. 박용성 이사장과 일부 중대 학생들이 두산을 환영하는 논리는 뻔하다. 기업에서 투자를 팍팍해서 밀어줘야 대학 경쟁력이 높아지고, 그래야 학생들의 취업률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대학 브랜드의 상승을 가져오고…실제로 이 논리는 일명 ‘성대 훌리(건)’들이 2001년에 열심히 퍼뜨린 논리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겹게 반복하고 있는 얘기다.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지 약 2년만에, 학교 측은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현재 18개 단과대, 77개 학문 단위를 가진 중앙대를 10개 단과대, 40개 학과로 대폭 축소시키겠다는 것. 이는 학생이 많지 않은 학과나 조금이라도 관련성이 있는 학과끼리 마구잡이로 묶어서 통폐합시키겠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경영대학의 경우 기존의 경영학부에 경제·응용통계·글로벌지식·국제물류·금융공학과가 합쳐지고, 독문과·불문과·노문과 등이 통폐합되어 유럽 문화학과가 되는 식이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딱 떠오른 명사들이 있었다. ‘보건복지가족부, 교육과학기술부, 문화관광체육부.’ 이익ㆍ능률ㆍ경쟁력이라는 말만 알 뿐, 철학ㆍ질적 차이ㆍ특성과 같은 말은 없는 그들. 지금 중앙대 총장과 두산기업의 눈에는 독문과·불문과·노문과의 특성과 전통과 학풍, 그리고 무엇보다 그 학문으로서의 가치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저 이처럼 돈이 되지 않는 ‘영세 학과’는 마치 기업구조정하듯 처리해야 할 문제에 불과하니 말이다. 또한 자본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여 기선을 장악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는 것도 비슷한 지점이다. 2008년 두산기업이 중앙대를 인수한 뒤부터 중대 내 6개 학내 언론사는 언론매체부장교수의 사전 검열을 받은 뒤에, 매체를 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작년 11월 25일 <중앙문화>58호가 미처 검열을 받지 못한 채, 기업의 대학인수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자 교지가 전량 회수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학교 측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미 학생들은 “2010년 예산에 교지 예산이 없다”는 언론매체부장의 선언을 들은 상태다. 그동안 연간 3500만원 가량의 지원을 받아 교지를 발간해왔던 학내 언론사로서는 청천벽력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학내 언론을 사전검열하는 것도, 예산을 학생들과의 아무런 상의없이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것도 학교 측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바로 학내 언론은 독립언론이 아니라 학교규칙에 따르는 ‘기관지’이기 때문. 학규를 따르는 기관이기에 학교나 두산에 비판적인 기사를 실어서는 안된다는 발상은, 언론을 자신들의 ‘찌라시’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그들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판하는 것도 어쩌면 속편한 말에 불과할지 모른다. 며칠 전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엄기영 MBC 사장이 자진사퇴한 후, MBC 노조는 곧바로 투쟁 모드에 돌입했고 16일 총파업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다. 김인규 낙하산 사장이 취임한 후 저녁 9시마다 온국민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땡이뉴스가 방송되고 있는 KBS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 이는 자본과 권력 양자로부터 독립을 지키는 공영방송을 사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KBS의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나 MBC노조의 태도는 단지 자신의 직장을 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언론이 막혔을 때, 이명박정권의 독주를 막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 반대로 그럴수록 이명박 정부나 삼성 혹은 중앙대의 두산기업은 학내언론을 잠재워야 한다. 사전검열로 인해 기자들이 교수에게 불려가 꾸지람을 듣고, 교지가 회수되고, 예산지원이 끊긴 중앙대에는 방학중인데도 각종 대자보들과 펼침막(플랭카드)들이 나부끼고 있다. 어떻게든지 사실을 알려야하기에, 학교의 고객이나 직원이 아니라 학교의 주체로 스스로 서기 위해. 자신들이 두산직원이 아니라, 중앙대 학생임을 당당히 밝히기 위해. 학내언론과 학생자치활동을 위한 중대 학생 기자들과 총학생회의 운동에 대해, 중앙대 박범훈 총장은 최근 현직 한국 대통령의 따라잡을 무식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계속되는 학생들의 면담요구에 총장실 앞 계단에 직원들을 배치하여 ‘총장산성’을 쌓고, 학생들의 시위를 보고 “촌스럽게 바보짓을 하고 있다”는 막말까지. 중앙대 이사장과 총장의 행동은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의 플랜을 밀어붙이는, 그러면서도 간간히 막말어록을 남겨주시는 현직 한국의 대통령과 슬플만큼 닮아있다. 그렇다면 두산을 등에 업은 학교측이 의기양양하게 이런 일들을 추진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구조조정을 통한 능률향상과 이를 통한 경쟁력 확보만이 살길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비록 운동권 일부가 시끄러울지언정,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또 기업의 돈이 결실을 맺을 즈음에는 모두가 자신의 큰 뜻을 알아줄거라는 굳은 신앙. 중앙대 싸움은 중요하다. 2000년대 학번인 나는 90년대 후반 선배들과는 달리 운동권 막차의 뒷모습도 보지 못했다. 교내 학회도 자치활동도 많이 척박해져 있었다. 지금 중앙대에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학생들도 전통적인 학생운동의 트레이닝(?)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강요된 침묵을 거부하고 있다. 이제 곧 2010년 새학기가 시작된다. 이번 새내기들은 예전 ‘운동권’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난,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청소년 운동을 경험하고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라는 계급 문제를 겪었고 대안학교 출신이 드물지 않은 새로운 새대이다. 어쩌면 이들은 ‘작은 사회’인 대학에서 학교와 두산이라는 권력과 자본과 맞서 싸우는, 어른이 되는 연습을 실전처럼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대싸움은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는 민주주의의 연습장’이라는 대학의 고색창연한 정의를 되새기게 한다. 그래서 이 일은 대학의 문제이자 대학 담장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중앙대 싸움은 쉽지 않다. 마치 2008년 촛불이 거세게 일렁거렸지만 흩어져 버렸듯이. 그러나 비록 분패하더라도 싸워본 경험은 중요하다. 이것이 내가 중앙대 싸움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 싸움으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주체들이 태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