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낳기
결혼을 한지 어느덧 세 달이 지났다. 이명박 덕분에 (어떤 면에서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불규칙한 생활과 선풍기 바람 때문에 잠긴 내 목소리를 들은 친정엄마는 은그슬쩍 ‘설마 애 가진거 아니냐’고 그러신다. 이 타이밍에 애를 갖는다는 거, 젊은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사회적으로 포기할게 많아진다는 걱정과 함께 살짝 기대도 되는게 친정엄마의 솔직한 마음인가 보다. 시댁에서는 딱 부러지게 애를 가져라 말아라 하는 것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많으면 애 키우기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즉, 언젠가는 애를 낳으리라/낳아야 한다고 보는 거다.
모르겠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데 ‘자신이 없다.’ 나는 아이를 ‘내 새끼’로 키울게 뻔하다. 고양이들을 하나같이 ‘내 고양이’로 만들었듯이. 고양이들은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점차 내 새끼에서 친구로,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대드는 존대로 바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다.
손바닥만한 고양이를 데려와서 5년 넘게 키우고 이제는 ‘함께 살기’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가끔은 돌발적으로 ‘사람 새끼를 낳아 키우면 좋을거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계속 집에 있어야 하는데다, 나랑 긴 대화를 하지 못하니까. 스피노자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인간만큼 유익한 존재가 없다는 말. 고양이와의 소통이 이렇게 멋진데, 내가 직접 아이를 낳아서 그가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은 또 얼마나 감동적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가끔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를 지나친 인간중심주의로 해석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2 키우기
최근 연구실에는 아이들이 마구 뛰어다닌다. 지금으로부터 한 4,5년 전에 결혼한 연구원들의 2세가 공교롭게도 거의 6개월 안에 여럿 태어난 것. 철저하게 어른들의 공간이었던 연구실에 청소년도 아닌 갓난애기와 함께하게 되자 여러 가지 재미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힘든 점들이 많다. 공부 좀 할라치면 울려펴지는 아기들의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 떼쓰는 소리. 혹은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도 전에 ‘누구’엄마라고 통칭해 버릴때의 불편함 . 또 가끔은 그 다른 존재들의 이모/삼촌 노릇을 해줘야 한다는 것은 아기다루기에 매우 미숙한 나로서는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나에게 연구실에서의 육아는 매우 흥미로운 관심거리이다. 지금 연구실의 아이들은 공동육아나 대가족 육아 속에서 자라고 있는데-예컨대 아기 아빠는 아이를 아무에게나 ‘잠시’ 맡기고 본인은 담배피러 간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다. 아이들은 2,30명의 어른들에게서 말과 관계를 배운다. 아이에게 MWTV 식구들은 누구보다도 좋은 삼촌들이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아무리 논리를 펼치고, 작전을 짜고, 회의를 해도 하기 힘든 일을 그들의 존재 자체로 단숨에 돌파해버리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연구실 식구들 모두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육아에 참여하기에, 엄마들은 잠시나마 책을 보고 세미나를 하고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이런 관계 없이 핵가족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정말 너무 힘들거 같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나는 나를 둘러싼 시선들이 미묘하게 바뀌는걸 보고 마음이 좀 그랬다. 이는 단지 답답하거나 서운한, 그런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면서 나는 수많은 고양이들/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자기 고양이 뿐 아니라 친구네 고양이 안부를 묻고, 일이 있을 때 서로 상대방의 고양이를 맡아주며, 아이(고양이)에 대한 고민을 상담한다. 애 성격, 관계, 건강 등등. 이런 커뮤니티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고양이와 지금껏 함께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의 모토는 ‘자기의 일은 알아서 하라’다.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하기.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운동 뿐 아니라 공부도, 생산도, 결혼도,아이 낳는 것도 혼자 할 수 없다. 운동에는 연대가 필요하고, 공부에는 친구가 필요하며, 결혼에는 상대방 뿐 아니라 가족이 개입된다. 요즘은 조금씩 지역공동체나 공동육아/공동체 교육에 대한 움직임이 일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여성 혼자 맡기를 강요하고, 그 여성에게 온통 모성/엄마라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어떻게 한 인간이 완전히 엄마이기만 할 수 있을까. 각자에게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수십년의 인생이 있었고, 또 지금도 여러 가지 배치 속에 놓여있는데 말이다. 그/녀는 운동가이고, 학생이고, 생활인이고, 엄마이고, 친구이고, 가족이고, 연인이고 블러거이고, 국가가 호명할 때는 @#$이다. 엄마 또는 모성을 무조건적으로 우선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를 ‘엄마’로 환원시키지 말자. 이 어려운 줄다리기의 끈을 놓지 말자.
|